▲ 요코이야기의 역사 왜곡여부에만 치중한 채 일제 강점기를 다룬 우리 소설들은 외면받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석주희
"서울을 떠나야겠어요, 어머니. 조선 남자들 여러 명이 숲으로 여자들을 끌고 갔어요. 거기서 한 여자애가 강간당하는 걸 봤어요."
 
-『요코 이야기』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요코 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지난 1986년 미국에서 출판된 『요코 이야기』는 13년 동안 초·중등학교에서 교재로 활용됐다. 하지만 뉴저지 주의 한 교포학생이 역사 왜곡을 담은 『요코 이야기』 수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등교 거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후 『요코 이야기』의 역사 왜곡 문제와 저자의 아버지가 전범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정 싸움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소설은 허구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쉬운 어린이들에게 교재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 자체에 민족주의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갖게 도와줘야 한다”는 황금중 교수(교과대·동양교육사/철학)의 말처럼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세계에 올바르게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를 다룬 우리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저 철조망만 넘으면 우린 자유야…”

미국에서 20여 년간 교편을 잡았던 최숙렬 작가의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원제: The Year of Impossible Goodbyes)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모습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와 소련군 치하 평양의 모습을 어린 소녀인 ‘숙안’의 눈으로 그려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 시대의 희생양인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한반도 비극을 세계에 알린 이 소설은 자유의 소중함, 가족의 가치, 절망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의지를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소설을 펴낸 출판사 ‘다섯수레’의 김경희 편집주간은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요코 이야기』를 읽는 것에 충격을 받은 최숙렬 작가가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며, “간접적으로나마 그 시대의 역사를 올바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출판을 결정했다”고 발간의 취지를 말했다.
실제로 연희동에 소재한 서울 외국인 학교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요코 이야기』와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을 함께 읽히고 있다”고 밝혀, 일제 강점기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열매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는 압록강을 넘어 달아나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 독일에서 발간된 고(故) 이미륵 박사(본명 이의경)의 『압록강은 흐른다』(원제: Der Yalu fliesst)는 최초로 한국의 일제 식민지 상황을 해외에 알린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미륵 박사의 일제 강점기하 조선에서의 소년 시절부터 독일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써낸 작품이다. 소년 시절에 신학문을 접했을 때의 느낌과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에 참여한 기억, 그 때문에 독일로 피신해야 했던 저자의 경험이 독일어로 수려하게 표현돼 독일 교과서에도 수록되는 등 독일문단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이 책을 청소년이 읽기 쉽게 재번역해 출판한 ‘계수나무’의 위정현 대표는 “『압록강은 흐른다』를 인상 깊게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인간적이고 따뜻하면서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담담하게 그 시대를 표현한 이 책은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중요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더 이상 교코가 아닙니다”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뉴 베리상을 수상한 작가 린다 수 박(한국명 박명진)의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원제: When My Name Was Kyoko)는 일제 강점기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뛰어난 구성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순희’와 ‘태열’이라는 남매가 서로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시대의 비극을 순수한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순희와, 소년이었지만 장남으로서 결국에는 가미가제 특공대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태열의 두 이야기는 서로 부족한 역사적 사실을 보완하고 배가시키면서 생생하게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다. ‘작가의 말’에서 린다 수 박은 ‘소설의 많은 부분이 우리 부모님께서 내게 직접 들려주셨던 이야기라며, 이 책은 픽션이지만 세부적인 역사적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진실’이라고 말했다.

“우린 이제 이름을 잃었어”

지난 1970년 미국에서 출판된 작가 김은국(미국명 Richard E. Kim)의 『잃어버린 이름』(원제: Lost Names)은 린다 수 박이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의 집필시 참고했을 정도로 일제 강점기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 자전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 조선인 소년이 일제하의 불의와 야만성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 한민족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작가 김은국이 어린 시절에 겪은 일제 강점기 때의 한국을 그렸으며, 한 나라의 국민이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이름까지 빼앗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하지만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잃어버린 것과 빼앗긴 것은 차이가 크다’며,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원한에 사로잡힌 것에 불과하지만, 잃어버렸다고 깨달으면 그것은 내 책임으로 돌아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반성하게 해준다’고 말해, 우리가 일본에 대한 원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특히 이 소설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 카터 에커트 교수가 지난 2006년 12월 16일 자 「보스턴 글로브」지에서 ‘한국의 역사적인 환경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수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

한편, 우리도 일제 강점기를 다룬 소설을 직접 교재로 채택해 교육하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을 교육청 차원에서 추천도서로 지정해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읽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일선학교에서 자발적으로 권장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는 서울특별시 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의 한 관계자의 말처럼 이러한 주장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황 교수는 “역사 교육은 작은 것이라도 검증된 것에 기반을 둬야 한다”며 “우리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철저히 검증된 역사를 교육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을유문화사’의 『해외 한국학 백서』에 따르면 세계 대학 중 한국학 관련 과목이 개설된 대학은 60여 개국, 7백35개 대학에 그친다. 이는 세계 일본학 관련 과목 개설 대학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치이며, 그나마도 단순 실용 한국어 강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코 이야기』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세계에 올바로 알리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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