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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 더욱 빛나는 그들
  • 이상정 기자
  • 승인 2007.03.12 00: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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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캐스팅(Double Casting)’은 하나의 역할을 두 명의 배우가 번갈아가며 연기하는 것이다. 동일한 배역을 같게 또는 다르게 그려내는 색다른 매력의 그것, 그래서 혹자는 “더블캐스팅 뮤지컬을 제대로 즐기려면 서로 다른 배우의 캐스트로 이뤄진 공연을 한번씩 더 봐야한다”고 말한다. 서범석씨와 정상윤씨는 그동안 각기 다른 공연장과 무대에서 자신만의 특색있는 연기로 무대를 꾸며왔다. 그런 두 사람이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에서 사랑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진 사냥개 ‘하운두’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더블캐스팅에 대해 서범석씨는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토대로 역할에 접근하므로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틀에 박히지 않는 자유로움과 참신함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지는 창작 뮤지컬에서 이러한 다양성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 서로 라이벌 관계는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두 배우는 마치 한 명인 양 입을 모아 소리낸다. “둘이 함께 하나의 배역을 만들어가는 거죠”

▲ 뮤지컬 『캣츠비』에서 하운드역으로 더블캐스팅 된 서범석(좌)과 정상윤(우)

연습 내내 서로를 지켜보며 상대의 생각을 읽어가는 그들의 ‘하운두’는 닮은 듯 다른 두 모습이다. 서범석씨는 “그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민합니다. 페르수를 매우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그녀에게 매달리진 않아요. 캣츠비와 페르수가 사귀는 6년 동안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그들의 사랑을 지켜봐주죠”라며 하운두를 설명한다. 정상윤씨도 그만의 생각을 담아낸다. “사랑에 열정적인 그를 표현하고 싶어요. 현실의 어떠한 장애물도 그의 끈기와 집착 앞에서는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죠”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말이 너무 다른가? 아니다. 서범석의 하운두도 정상윤의 하운두도 모두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그 하운두, 맞다.

하운두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이 뮤지컬 배우에 대해 갖는 생각은 똑같았다. 모든 분야의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그들은 뮤지컬 배우를 선택했다고. 무대 위에서 연기, 노래, 춤까지 모두 소화해내는 뮤지컬 배우는 그들이 ‘진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꼭 거쳐야하는 길이었다. 정상윤씨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대학 때 연기를 전공하면서 모든 연기의 기초가 되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바라던 뮤지컬 배우가 되어 연기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무엇일까. 서범석씨는 뮤지컬 『블루사이공』의 김문석 상사 역을 꼽았다. “체중감량에 연습강행까지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처음이 주는 설렘과 기쁨으로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그리고는 지금 그 설렘의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는 정상윤씨에게 “나보다 더 나은 재능과 열정을 가진 것 같아 기대된다”며 격려해준다. 그러자 정상윤씨는 “범석 선배와 함께 연기하는 ‘하운두’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로 만들겠다”며 미소지었다. 무대뿐만 아니라 인터뷰 도중에도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지던 그들은 인터뷰 내내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묻자 정상윤씨는 슬쩍 눈치를 보며 ‘젊음’이라고 당차게 말한다. 젊음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다고 한다. 3년 전 서범석씨가 연기했던 『지킬 앤 하이드』부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까지 모두 섭렵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같은 질문에 서범석씨는 젊음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오랜 경력을 쌓다보니 남들보다 감정, 시선처리, 대사 하나하나 꼼꼼하게 처리하는 노련함이 생겼다”며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올해로 주연 데뷔 7년째를 맞은 서범석씨는 국내 창작 뮤지컬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 유명 작품에 비해 국내 창작 뮤지컬은 재정이나 기술면에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범석씨는 “국내 뮤지컬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기에 외국 작품에서 놓칠 수 있는 소소한 공감을 더 쉽게 얻어낼 수 있다”며 애정을 드러낸다. 다른 나라 관객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객이 배우와 직접 소통하려는 참여 의지가 강한 편이다. 이러한 관객들에게 좀더 다가가기 위해 서범석씨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대 안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에 충실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서범석씨, “마치 접신(接神)을 한 무당의 몸짓처럼 무아지경의 연기를 꿈꿔요. 한번쯤 그런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의 말에서 자못 진지함이 묻어난다.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던 그들의 환상적인 호흡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 고민을 터놓고 말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이들은 이번 공연 준비에서 처음 만났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형제같은 모습이었다. “선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정상윤씨의 말에 서범석씨는 몹시 쑥스러워하며 한마디 건넨다. “예술을 하려면 생각이 열려야 되는데, 선배가 너무 엄격하게 굴면 후배가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가급적이면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예요.”

이들이 직접 만난 시간은 짧지만 그들의 인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서범석씨가 막 뮤지컬을 시작했을 즈음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정상윤씨의 대학시절 은사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둘은 한 명의 선생님 밑에서 무대를 배웠다. 대학시절 서범석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정상윤씨는 ‘선배와 같은 작품에서 동일한 배역을 그려낸다는 것은 영광’이라며 마지막까지 선후배간의 돈독한 정을 과시했다.

인터뷰가 끝난 연습실에서는 곧바로 뮤지컬 연습이 시작됐다. 이날 하운두역을 맡은 정상윤씨는 연습인데도 불구하고 무대 못지않은 엄청난 연기력과 파워로 연습실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그가 “죽여! 죽일 수만 있다면···”이라고 소리칠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잔혹한 모습의 하운두가 그대로 드러났다.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목청껏 오열하는 정상윤. 그가 그려낸 하운두는 ‘영원을 꿈꾸는 광기 어린 사랑의 신봉자’, 그 자체였다.

연습실을 뜨거운 열기로 채우던 정상윤씨의 하운두를 잊지 않은 채, 기자는 또 다른 하운두 서범석씨를 보기 위해 프리뷰 무대를 찾았다. 아담한 공연장에서 그날의 캐스트였던 서범석씨는 물론, 얼굴에 약간의 긴장감을 띤 채 그 옆자리를 지키는 정상윤씨를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오르고. 우리는 또 다른 하운두의 연기를 숨죽여 기대한다. 서범석씨의 하운두는 어떤 색일까 궁금해 하면서. 비록 같은 무대는 아니지만, 무대 밖에서 서로를 비춰주는 더블캐스팅으로 더 완벽해진 하운두가 그려내는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함께이기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운두는 더욱 큰 빛을 내뿜을 것이다.

/글 이상정, 이승희 기자 unique_hui@
/사진 김평화, 송은석 기자 insomniaboy@

이상정 기자  iwhippyland@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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