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19살인데 이제 중학교 졸업했어요.” 이주노동자 자녀인 몽골인 계연주(19)씨의 말이다. 계씨는 지난 2001년 우리나라에 왔다. 당시 계씨는 14살로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였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학교에서는 계씨가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등록 체류자란 이른바 ‘불법 체류자’들로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관광 비자나 방문 비자 등으로 입국해 단순 인력으로 취업하는 경우다. 또 다른 하나는 산업 기술 연수생 신분으로 들어왔지만 근로조건에 불만이 높아 사업장을 이탈한 경우가 포함된다. UN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우리나라는 계씨와 같은 미등록 체류자 아동의 교육권 역시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방과후 교실인 지구촌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지역팀장은 “많은 학교들이 책상이 없다, 교실이 부족하다 등의 이유로 이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우리나라는 UN으로부터 ‘아동권리협약’의 54개 항목 중 21개를 준수하라는 권고조치를 받은 바 있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어렵게 학교에 들어가도 많은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계씨는 이후 초등학교 5학년으로 학교를 다니게 됐지만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말에 능숙하지 못했던 계씨는 자신보다 어린 반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한 것은 물론이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 역시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은 뒤쳐졌고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멀어져갔다. 현재 중학교 과정을 마친 계씨는 “중학생이었을 때 집에는 학교 간다고 하곤 학교를 가지 않았던 적이 많아요”라며 “출석일수를 겨우 채워 졸업했어요”라고 고백한다. 계씨는 현재 고등학교 진학을 망설이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 같기 때문이다. 이팀장은 “담임선생님들이 이주 노동자 자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가 그냥 방치돼 구구단을 못 외우는 경우도 봤다”라고 말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2006년 5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교육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다문화 가정 자녀의 학습 결손을 방지하고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학교’의 지원기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여기에는 전국 방과후 학교 시범학교에 우리말과 부족한 교과를 지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학부모와 함께 하는 문화체험 교육’을 시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그러나 이팀장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전국에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이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은 실행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른 해외 선진 국가들은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지원 대책이 활성화 돼 있다. 일본의 경우 외국인 자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일본어나 역사 과목 등에 대해서는 학교에 특별 교사를 배정한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많은 가나가와현에는 일본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특별학교가 있어 일반 학교로 보내기 전에 일본어를 먼저 교육시키도록 한다. 독일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이주노동자 학부모를 위한 과정을 따로 두어 이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UN의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은 자유롭게 이주하고 노동할 권리와 인간의 기본권은 어느 국가에서든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 협약을 비준할 필요가 있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의 김준식 관장은 “세계화 시대에 이주노동자 문제는 우리 삶 속에 더 깊숙이 들어올 것인데도 우리사회는 이주노동자들과 이들 가족을 위한 지원이 제도적으로도 부족하고 인식도 후진적”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김관장은 “심지어는 우리나라에도 빈곤가정의 아이들이 많은데 왜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도와야하냐는 불평도 많다”고 말한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면 뭐합니까”라고 묻는 김관장. 그의 물음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사회가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

/신인영 기자 kongs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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