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부터 현재까지 등록금 정책의 변천사를 조명하다

한 해 등록금 1천만원시대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우리대학교 의과대학의 두 학기 등록금 1천51만5천원을 필두로 성균관대, 인하대, 영남대, 건국대의 의과대학이 모두 두 학기 등록금이 1천만원을 넘어섰다. 비단 의대뿐만 아니라 예·체능계열은 물론 이공계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저액인 인문계도 인상률은 갈수록 높아만지고 있다.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은 이제 연례행사처럼 자리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수익자부담원칙’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예나 지금이나 편익대상자들이 전적으로 경비를 부담하는 수익자(수혜자)부담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소득수준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전에도 일반서민들은 등록금을 고가로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80년대까지는 대체로 정부차원에서 저등록금 정책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고, 국립대의 경우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의 통제가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시행된 등록금 자율화조치와 90년대 들어 파급된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해 대학등록금은 가파른 인상률을 보이게 된다. 지금부터 시기별로 등록금 정책의 변천사를 짚어보자.

1940년대~1960년대 -‘우골탑’ 소 팔아 대학 가던 시절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대학들이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시기부터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국민들의 교육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대학들이 설립됐다. 이때 세워진 대학은 주로 사립대학이었고 대학들은 거의 모든 재정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등록금에서 수익자부담원칙이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전쟁 이후 절대빈곤상태를 감안, 정부는 대체로 저가등록금 정책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에는 큰 부담이 됐다. 대학이 ‘소를 팔아서 댄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란 뜻의 우골탑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1970년대~1980년대 - 등록금 고율인상의 출발점
1970년대 들어 박정희 정부는 전 정권하에서 갑자기 늘어나 운영이 방만해진 대학들에 강력한 통제를 실시한다. 이때의 정부는 대학정원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국가가 행사하는 법을 시행했다. 전두환 정부는 나아가 입학 시에 학생 선별을 하지 않고 졸업 시 학생정원을 설정하는 졸업정원제를 시행했다. 이처럼 정부가 대학정원이나 졸업생 수를 통제했던 이유는 이것이 등록금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이전에 실행됐던 졸업정원제를 폐지하고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자율화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이는 이후 사립대학들이 고율의 등록금 인상을 가능케 해주는 것으로 등록금 정책사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다.

1990년대 - 신자유주의의 물결
1990년대는 작은 정부를 구현하고 시장경제논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입각한 교육정책이 시작된 시기다. 등록금은 90년대 말 IMF파동으로 잠시 동결됐으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당한 수치의 오름세를 회복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1995년에 시행된 대학정원자율화인데 이는 대학에 거의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지금의 고가 등록금 현상의 시발점이 된 정책이다. 등록금책정에 있어서 이미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던 대학들은 정원선발에 대한 자유까지 부여받아 원하는 만큼 학생을 받고 등록금을 걷을 수 있게 됐다. 이어 김대중 정부는 각종 평가제도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차등 지원해 교육 분야의 자유경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한 국립대에도 사립대와 동일한 자율성을 부여해 모든 대학들은 자유롭게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됐다.

현재의 노무현 정부도 신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등록금 정책을 시행중이다. 때문에 지금의 정책기조가 계속되는 한 등록금의 인상행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골탑에서 인골탑(소를 팔아도 대학을 갈수 없는 상황을 빗댐), 모골탑(나이든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며 학비를 댄다는 말)까지 대학 등록금과 관련된 신조어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해마다 뜨거운 공방에 휩싸이는 등록금, 그 논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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