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우 학술부장 spinoza@yonsei.ac.kr
현재 우리나라 사회는 영웅의 사회다. 끊임없는 역사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녀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위인들의 자서전과 평전들이 출판계를 장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59년 쿠바 혁명을 이끌었던 영웅 체 게바라의 평전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이제 영웅은 신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의 영웅이 새롭게 발굴될 뿐만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기까지도 한다. 더 이상 영웅은 전쟁터에서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이나, 중국의 요순 임금에 비견되는 성군 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나 사업가, 심지어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까지 영웅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영웅은 언론과 출판을 비롯한 매체들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변모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웅들의 삶에 감동하고, 우리 역시 그들처럼 될 것을 소망하게 된다.

왜 이러한 '영웅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현재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해마다 계속되는 정치적 갈등, 진보와 보수 간의 사회적 대립,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불안….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처럼 느꺼진다. 때문에 우리는 영웅을 원한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 이 때를 지으리로다( 丈夫處世兮 其志大矣 時造英雄兮 英雄時趙)"라는 시구처럼, 이 암울한 시대를 종식시켜 줄 '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그려내는 영웅들은 우리들에게 삶의 교훈과 지혜를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한 혁명가의 삶을 통해 그의 열정을 배우고, 폭압적인 군사정권에 대항해 자신의 몸을 불태운 한 청년의 이야기에서 불굴의 용기와 투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하나의 바람직한 전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록 신화로 치장된 것이라 할지라도 영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열풍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최근의 영웅 열풍은 비판과 성찰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호쾌한 문장으로 치장된 영웅의 삶은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될 뿐이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사상의 결함이나 실패는 그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단지 범인들은 영웅의 삶에 경탄하고, 그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우리 사회의 영웅 열풍이 하나의 신화로서, 과잉된 민족주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고대사의 영웅들 대부분이 역사적 객관성을 상실한 채, 단순히 우리 민족 최고의 영웅으로만 그려진다. 이러한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것은 마치 민족에 대한 반역이나 배신으로 비춰진다.

혹자는 이 의견이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비판할 지도 모른다. 글쓴이 역시 이 글에서 제기한 문제가 실제 나타나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의 사소한 근심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과잉된 영웅 열풍을 볼 때 현재를 낙관하기만은 힘들 듯하다. 자신들의 민족주의와 영웅사관에 집착해, 세계를 두번이나 뒤흔든 전쟁을 일으켰던 어느 민족의 비극이 오늘 우리 땅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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