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관대첩비부터 프랑스 외규장각까지 해외문화재 환수운동의 현실과 과제

 ‘74434’. MBC ‘느낌표’의 한 코너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해외로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 수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언뜻 보면 의미없어 보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을 한(恨) 맺힌 사연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고국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환수’. 최근 우리 품으로 돌아온 문화재와 또 찾아와야할 문화재를 통해 그 풀리지 않는 문제의 해답을 예측해볼 수 있다.

   
▲ 해외의 우리 문화재들이 국내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북관대첩비,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길주(현 김책시)에 침입한 왜군에게 승리한 의병장 장문부 선생을 기려 1707년에 세운 조선시대 대첩비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한 구석에서 커다란 돌에 의해 짓눌려 있던 북관대첩비는 지난 2005년, 러·일 전쟁 당시 일제가 강탈해간지 꼭 1백년 만에 우리나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환수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북관대첩비환수추진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았던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은 “가장 큰 어려움은 일본 외무성과의 담판이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일본외무성측은 ‘비석의 소유권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개입할 권한은 없다’며 그 뿐만 아니라 북관대첩비는 원래 북한에 있던 것으로써 남한에서 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없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본 측의 주장에 우리 정부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반박했다. 첫째, 북관대첩비는 야스쿠니 신사가 약탈해 간 것이 아니고 일본정부가 가져간 것이니 반환의 책임도 일본정부에 남아 있다는 것. 둘째, 일본이 북관대첩비를 강탈해 갈 때는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 상황이었으므로 남한에게도 연고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 끝에 우리나라는 결국 일본 외무성 차관으로부터 대첩비를 한국에 되돌려주는데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어렵게 받아냈다. 이처럼 한번 반출된 문화재가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환수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김 의원은 “북관대첩비의 환수는 민족사의 수모를 씻는 상징이며, 대첩비의 원래 위치인 함경도 길주를 찾은 것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1백년 동안 무거운 돌덩어리에 짓눌려져 있던 북관대첩비가 마침내 그 족쇄를 벗어나는 순간에는 아주 홀가분하고 벅찬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북관대첩비와 더불어 최근 제자리를 찾은 또 하나의 문화재로는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아래 공신교서)’가 있다. 여느 문화재와는 달리 전국적인 시민모금을 통해 이뤄진 공신교서의 환수는 직접 우리의 손으로 찾아온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직접 자신의 두 손으로 공신교서를 받아 왔던 개그맨 서경석씨는 “하나의 문화재라는 생각보다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일한 유물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며 그 당시의 특별한 감흥을 전했다.

외규장각도서, 그 소리없는 전쟁

 이렇듯 우리 곁을 떠났던 유물들이 하나 둘씩 우리 손으로 돌아오면서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비영리 단체인 ‘문화연대’를 주축으로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도서 반환 소송 운동’이 이뤄지고 있다. 사실, 외규장각도서를 가져오기 위한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3년 외규장각도서 반환과 관련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간의 협의가 있었으나 양국의 의견차로 인해 무산됐던 전례가 있다.

 이처럼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소송은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차원에서도 실패했었던 일이 과연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을지 의문시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에 대해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오히려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시도하기 때문에 이번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이가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법적 여지가 있다”며 “우리가 그 길을 미리 개척해 놓는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대응했다. 또,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환수추진위원단(아래 환추위)’에 대해 ‘국제법’ 전공자가 없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이번 소송은 프랑스 ‘국내법’에 따른 문제”라며 “그렇기에 현재 프랑스 법무부에서 인정한 한국인 변호사와 함께 프랑스 국내법에 로드맵을 맞춰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외규장각도서 환수에 대해 하는 프랑스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황 위원장은 “프랑스는 보편적으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다른 나라의 문화재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며 “이것은 얼마 전 ‘영구임대’ 형식으로 겸재 정선 선생의 그림들을 돌려준 독일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움직임은 ‘문화보편주의’와 ‘문화귀화주의’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문화보편주의는 자신들이 유물을 보유하고 전시함으로써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재를 소개할 수 있고, 제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말한다. 또, 자국으로 문화재가 들어오고 1백년이 흐른 후에는 해당국가로 자동 귀속된다는 것이 문화귀화주의적 입장이다. 그러나 황 위원장은 “프랑스의 주장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론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6대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문화재의 보존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문화귀화주의란 것이 불법으로 반출된 이른바, ‘장물’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프랑스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환추위는 지난 10월 28일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상대로 반환을 요구하는 공식문서를 보낸 상태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두 달 후인 올해 말까지 프랑스 정부의 이렇다 할 답변이 없으면 환추위는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지금과 같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의해 증폭된 경향이 있다. 여기에 는 방송의 특성상 ‘상업성’이란 태생적인 불안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 더욱 강조되는 것이 바로 ‘문화민주주의’이다. 황 위원장은 자신의 경험으로 문화민주주의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가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을 때였다고 한다. 어느 꼬마가 엄마와 함께 공신교서 앞에 서 있는 것을 봤는데, 엄마가 돌아서려 하자 아이가 “엄마 이거 내가 사온거야!”라며 엄마를 돌려세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아! 이것이 바로 문화민주주의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 것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자세’인 문화민주주의는 이처럼 하나하나의 문화재가 바로 ‘내 것’이란 인식 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문화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이 단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이는 비단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화유산들부터 소중히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를 떠났던 문화재들도 돌아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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