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부 정석호 기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것이… 나도 모르게 몸을 잔뜩 움츠려 두 손을 싹싹 비볐다. 갑자기 쌀쌀해져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내딛기 싫은 계절이다. 이럴 즈음이면 자연스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취재의 추억, 그리고 씁쓸한 기억에 이르기까지. 이제야 작은 공간을 빌어 감춰둔 기억 한 조각을 꺼내보고자 한다.

대학로를 걷다보면 자기네 공연으로 이끌려는 호객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영화 관련 잡지는 ‘국내 영화흥행 순위’의 명목으로 박스오피스 집계를 수두룩 쏟아낸다. 일각에서는 흥행 성적을 구구단마냥 1위부터 10위까지 차례로 선정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물론 관객수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지만, 흥행의 척도라는 공식은 씁쓰레한데. 더 이상은 이를 좌시할 수 없어 작금의 대한민국이 달콤한 ‘흥행병’에 중독돼 있음을 공표하겠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대학로 거리공연인 연합(아래 대공련)을 취재한 지난 1548호 ‘거리로의 기분좋은 초대’ 기사는 제목 그대로 기분좋은 만남이었다. 한낱 숫자놀음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은 마치 속된 세상을 벗어난 중생을 연상케 했다. 당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자는 기사 말미에 “공연 문화에 있어 하나의 르네상스 운동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며 끝을 맺었다.

그런데 그 말이 그야말로 무색해졌다. 대공련 홈페이지(http://www.streetplay.org)에 새로운 공연 공지는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고 있다. ‘무슨 사정이라도 생긴 것일까. 언젠가는 알리겠지.’라며 기다린 날이 어언 두 달이다. 얼핏 대공련 의장 이대희씨가 “우리나라에 거리공연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은 거의 없다.”고 남긴 말만 귓가에 울릴 뿐이다. 과연 주류 문화라는 공간 안에서 비주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문화의 순수성이 파괴되는 곳곳에 달콤한 상업화의 덫은 도사리고 있다.

비상사태, 진돗개 1호 발령이다. 흥행의, 흥행을 위한, 흥행에 의한 지금의 세태는 새로운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최소한 척박한 토지에 싹이 움틀 수 있게 거름과 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조만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자유분방하게 공연하는 그들의 모습과 조우하길 고대해 본다. 그나저나 조금은 다른, 비망록(悲望錄)이 돼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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