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이모현 PD와의 만남

 

를테면, ‘PD(프로듀서)’ 라는 사람들을 머릿속으 로 상상해 본다고 하자. 당신은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밤샘작업을 해서 부스스한 머리에,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걸걸한 목소리를 내며 비디오테이프를 뚝딱 편집해 내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특히 여성 PD라고 하면 남성 못지않은 목소리를 가진 터프한 여성의 모습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더구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야 하는 PD수첩의 여성 PD는 더욱 그럴 것이다. 상상만으로 강렬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은 『PD수첩』 최초의 여성 진행자, 이모현 PD(영문·86)를 만나봤다.

▲ 이모현 PD

영어조차 공부할 수 없었던 학창시절

MBC사옥 3층에 위치한 한 커피숍 앞에서 만난 이모현 PD의 첫인상은 괄괄한 여성 PD의 이미지를 한번에 깨뜨렸다. 고운 얼굴에 조곤조곤한 말씨, 투피스 바지정장 차림의 모습은 생각보다 너무 단아했다.
우리대학교 동문인 그녀에게 학창시절 이야기를 묻자, 이 PD는 “공부를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웃자 “나만 아니라 당시엔 모두가 공부를 못했었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어도 툭하면 시험을 거부하고 시위에 나갔었다”고 덧붙였다. 반미 데모가 극성일 때라 영어공부는 눈치가 보여서 잘 할 수 없었다며, 발음도 미국사람처럼 굴리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386세대의 공통적인 불만인 ‘학창시절이 너무 어두웠던 것 같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축제도 항상 투쟁처럼 했고 이념에 짓눌려 좋은 나이에 즐기지도 못했다는 그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며, PD생활을 하면서 조만간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 환경에서 PD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를 묻자 이 PD는 “학생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대학교 때 문화비평 동아리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비평하면서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대중문화와 연관된 직업 중에 PD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4학년 때 PD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마음을 정한 후 그녀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경쟁 치열한 PD시험에 1년 만에 합격했다.

여성 PD로 살아간다는 것

사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한 PD를 여성이 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더구나 여성 시사교양 PD면 현장에 많이 나가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걱정을 한다.
이에 이 PD는 “현장을 통솔해야 하기 때문에 리더십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 리더십은 강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장을 장악하는 데서 나오는 리더십일 수도 있고, 성품에서 나오는 리더십일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오히려 PD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지면 그게 곧 리더십이 된다고 설명했다.
『PD수첩』을 이끄는 8명의 PD들 중 유일한 여성인 그녀는 최근에 프로그램 16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진행자로 발탁됐다. 이 PD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많은 부담을 느꼈어요. 그런데 방송이 나가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것에 대한 의식을 별로 하지 않더라구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최초의 여성’이 신기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고 생각하니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 있다며, 여성이기 때문에 힘든 점이 아직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 여성이 주목받기에는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예전에 최초가 신기했을 때는 최초라는 사실로 주목을 받았었는데, 앞으로는 최고가 돼야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그녀는 야근 많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걸로 정평이 나있는 PD생활과 가정생활을 어떻게 같이 병행하고 있을까. 이 PD의 대답은 “절대로 병행한 적 없어요. 집에 가면 애만 보고 회사 가면 회사 일만 하죠”였다. 그녀는 일이 불규칙하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고 했다. 매일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고, 일할 때는 몰아서 일하고 휴식할 땐 자유롭게 휴식할 수 있으니 그런 불규칙함이 PD라는 직업의 매력 아니겠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방송 10분 전에 편집 끝!

『PD수첩』은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다. 보기만 해도 치열해 보이는 취재를 PD수첩팀은 어떻게 다 해내는 것일까.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만큼 순순히 취재원이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 PD는 “상상할 수 있을 만한 방법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그것만 파죠. 취재원을 만날 때는 무조건 녹음을 해놓고요”라고 말한다. 취재를 하다보면 일이 안 풀리기도 하고 촬영 펑크가 나기도 한다는 그녀. 게다가 화요일 11시에 시작되는 방송의 스튜디오 녹화를 당일 저녁 7시부터 한다고 한다. 주조정실에 보통 방송 시작 10분 전에 테이프를 간신히 넘기지만, 그래도 방송 펑크 낸 적은 한번도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PD로서 중요한 소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 질문은 하도 많이 받아서 정답이 있다”며 웃었다. 그녀는 첫째로 세상에 대한 관심, 둘째로 인간과 타인에 대한 애정을 꼽았다. 특히 ‘시사교양’은 세상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때문에 책을 많이 읽어 간접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PD는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뻔한 질문을 던져봤다.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무엇보다 연애 못해본게 후회스러운데 연애도 많이 해보시고요!”

/글 양재영 기자 qpwodudqp@yonsei.ac.kr
/사진 유재동 기자 woodvi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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