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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성별이 있나요?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위원을 만나다
  • 조근주 기자
  • 승인 2006.11.13 00:00
  • 호수 1553
  • 댓글 1

하리수, 홍석천이 우리 사회에게 던져준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이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최현숙 위원장이다. “평소에 세수를 하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고 오냐고 물어봤어요”라며 첫인사를 건네는 최현숙 위원장. 시원시원한 웃음과 몸짓에서 그녀의 호탕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위원장 /사진 유재동기자


최 위원장은 대부분의 사람처럼 이성애적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전 남편과 결혼해 25년 동안 두 딸을 낳으며 평범하게 살았다. 결혼생활 동안 몇번의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지만, 남편과의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떠난 인도여행은 그녀의 삶의 전환점이 됐다. 최 위원장은 “여행기간 동안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많았어요.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뭔지 계속 고민한 끝에 이성애적 삶이 아닌 양성애적 삶이 내게 더 큰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라며 고백했다.
그녀는 커밍아웃에 대해 “제가 워낙 독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라 커밍아웃 때문에 겪었던 심적 어려움은 특별히 없었어요”라며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과 부모님께 자신의 성지향성을 알릴 때 그녀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형제들은 저를 인정하기 어려웠겠죠. 결국 형제들의 반대로 부모님께는 끝까지 비밀로 했어요”라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최 위원장은 양성애적 삶을 선택한 후에 본격적으로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004년 커밍아웃과 동시에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과 한국레즈비언 상담소 ‘끼리끼리’를 통해 동성애자 인권침해와 관련된 형사사건들에 대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목말랐다. 최 위원장이 보기에는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의 활동이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성소수자 차별문제와 관련된 어떠한 법도 없었어요. 하지만 성소수자와 관련된 법제도를 만들어내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성소수자 위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죠”라며 말하는 그녀는 결국 이를 실천했다. 그 활동의 결과로 성전환자 성별변경에 관한 법의 국회발의안 통과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 금지 정책,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에이즈 예방법 개정운동 등 우리 사회의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일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대학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 위원장은 “섹슈얼리티는 자유이고, 문화에요.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촌스럽지 않나요?”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대학사회의 인식을 지적했다. 그녀는 이어 “대학에서 진리를 배우는 학생들이라면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해요”라며 대학 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소수자들의 관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약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규정들이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비의 날개짓이 허리케인을 만들어 내듯이,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학이 변하면 사회는 당연히 변하게 되죠” 라며 웃는 최 위원장. 그녀의 미소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따뜻한 꿈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조근주 기자 positive-thinking@
/사진 유재동 기자 woodvil@

조근주 기자  positive-think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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