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가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학생들은 교수를 파면하라며 징계 조치에 항거했고 교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딘가 익숙한 서사다. 얼마 전에 사직한 우리대학교 문과대학 A교수가 뇌리를 스쳐 간다.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하고 학생들이 징계 결과에 분노하는 일은 어느덧 대학 사회의 클리셰로 자리매김했다.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필자는 첫차를 타고 문과대학으로 향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머금은 연구동에는 10명 남짓한 학생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었다. A교수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고발하는 ‘포스트잇 액션’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아침 8시가 되자 그들은 준비해둔 포스트잇을 연구실 외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서슬 퍼런 기세는
나중에 밥 벌어 먹고살 직업으로 생각해 둔 것도 기자요, 1학년 1학기에 학보사에 몸담아 대학생활 내내 한 번도 기자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아직도 ‘소통’이란 두렵기만 하다. 일상적인 일이지만 사실 생각보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이란 훨씬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말하긴 쉬워도 잘 말하긴 어렵고 잘 듣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취득하는 국가직무 능력표준(NCS)에도 의사소통은 중요한 능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 먼 고대에도 프로타고라스나 고르기아스와 같은 소피스트가 ‘실전! 말로 상대를 이기는 법’ 등의 처세술 수업으로 ‘스타강사’였음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생존과도 직결되는 만큼 의사소통에 대한 욕구는 사회적 인간의 본질이라고
줄곧 연세를 동경했다. 꼭 입시생 때만의 얘긴 아니다. 병치레로 세브란스를 드나들던 다섯 살 무렵부터다. 대학 교정인지도 모르고 멀리서 바라본 백양로는 싱그러웠다. 동경의 이유는 점점 늘어갔다. 파란색, 독수리, 세련미, 지성, 유구한 역사, 동주와 한열과 빛나는 이름들이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단어는 자유였다. 애써 적기 새삼스럽게도 자유야말로 기독교 정신과 함께 연세를 관통하는 개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교훈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타교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어느 학교는 오직 진리를 좇는다. 어느 곳은 정의를 얹는다. 하지만 연세대는 자유에 방점을 찍는다. 수단은 진리고 목적은 자유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진리를 탐구한다.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 그렇다.
총학 공석 상황에서 학내언론은 힘들다. 기사거리가 없다. 굵직한 학내 사안이 터질 때마다 누구에게 대응계획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총학 선거 때마다 기자들은 제발 선본이 나오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선본이 나와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당선까지 가기가 정말 쉽지 않다.총학생회 선거 무산에 이어 다섯 단과대가 공석이 됐다. 당선된 단과대 학생회도 다를 게 없다. 선거인단을 지정해서 동아리마다 일정 인원 이상 투표하게 하는 총동아리연합회를 제외하면, 투표율 50%를 간당간당 넘긴 학생회가 대부분이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투표율이 좀 오를까 했는데…. 큰돈 들여 도입한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런 의심이 든다. 유권자들이 무정부주의자가 된 건가?모로 가도 굴러만 가면 된다.
요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충 살자’ 시리즈가 유행이다. “대충 살자. aa해도 bb하는 cc처럼”라는 형식의 이 유행어는 ‘양쪽 양말이 달라도 색깔만 같으면 신는다’라거나 ‘비닐하우스 위에서 자는 고양이처럼’이라는 식으로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일들에 적당주의를 섞는 것인데 이 시리즈는 사람들을 피식하게 만든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적당하게 살아가는 여유의 묘미’인 것이다.이러한 ‘대충 살자’ 시리즈는 현실을 유쾌하게 찌른다. ‘미니멀 라이프’부터 시작해 ‘소확행’과 같이 작은 것들이나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관심들이 커지고 있다. 장래희망도 대통령이나 우주비행사보다는 공무원이나 선생님과 같이 비교적 안정성이 보장된 직업들이 선호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손에 잡기 힘든 것들에서
#1일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시답지 않게 생각했던, 어쩐지 곧 헤어질 것 같다던 남자친구와의 이별 이야기였다. 흔한 대학생 커플들의 연애와 이별이라 생각했다. 친구가 당해온 폭력을 듣기 전까지. 남자친구는 헤어지자는 친구에게 칼을 들고 찾아와 자살하겠노라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주를 더 만나다 또다시 이별을 고한 며칠 뒤 새벽, 남자친구는 친구의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와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집에 있던 물건을 마구잡이로 집어 던졌다고 한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 더없이 무서워 보였다 한다. 듣기만 해도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2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다. 정말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오랜 시간 만나왔고 각자의 나이도 나이인지라 몇
첫 만남은 『칼의 노래』 였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책머리가 시작했다. 문장이 아름답다.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담백하게 다가와 무겁게 읽혔다. 눈길이 갔다. 그의 글은 새로운 경험이었다.그는 묘사에 능하다. 인물의 감정과 행동, 시·공간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려낼 뿐이다. 조선 군사 5천이 진주성에서 몰살됐다는 전보를 접한 이순신을 그는 『칼의 노래』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진주성이 깨졌다. 닭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남지 않았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아침에 바람이 불었다.’ 형용사 하나 없지만 생생하고 또 충분하다.그는 단문을 즐긴다. 형용사와 부사를 아끼고 호흡을 짧게 가져간다. 문장 속 군더더기를 빼기 위함이다. 언젠가 ‘주술 관계만으로 글을
내 방 창문에서는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꽤 가까이 보인다. 학생 전원이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 집처럼 살던 곳이라 그런지 동창들은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종종 학교를 찾아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사는 나는 긴 수험생활이 끝난 직후 딱 한 번, 그리웠던 선생님들을 뵈러 학교를 찾아간 이후 더는 가지 않는다. 이쯤 되면 다들 생각하겠지. 아, 이 사람은 삭막한 학창시절을 보냈구나.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달콤한 꿈을 꾸다 깬 기분이 들 정도다. 매주 기다려졌던 스페인어 수업시간, 영상과 롤링페이퍼를 준비하며 친구들과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던 일, 야자를 땡땡이치고 놀러 나갔던 일, 음식물 반입이 금지됐던 기숙사에서 몰래 야식을 먹던 일 그리고 모든 게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 바야흐로 프로들의 사회다. 온갖 분야에 쟁쟁한 프로들이 난무한다. 프로 스포츠야 30년도 더 전에 창설됐으니 일단 제쳐두자. 강남의 한 유명 간장게장 식당은 상호에 본인들의 ‘프로’의식을 내걸었다. 한술 더 떠 몇 년 전부터는 온갖 단어 앞에 프로를 붙이는 추세다. 프로 불편러, 프로 걱정러, 프로 불참러… 밥도둑 간장게장과 ‘프로 ~러’ 유행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서라도, 분명히 프로페셔널은 흥미로운 호칭이다.프로. 이 짤막한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의미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일 것이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건 간에 프로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위상이 한 단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 재미를 깨쳤으니 그리 유서 깊은 취미는 되지 못한다. 남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일 만큼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을뿐더러, 카메라를 다룰 수 있게 된지도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찍은 사진들은 어느덧 만 장을 훌쩍 넘겼다. 개중에 ‘잘 나온’ 사진을 뒤적이는 것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줬다. 절묘한 순간을 포착한 풍경 사진, 구도가 적절한 인물사진 등이 ‘잘 나온’ 사진에 해당했다. 하지만 밑에 적은 일들을 겪으며 나의 취미생활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짭짤한 공기와 따가운 햇볕이 적절히 어우러진 제주의 여름날이었다. 나는 4.3 평화공원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교통편을 알아보던 차에 밭
스승. ‘스승’이라는 단어는 조금 묘하다. 일상대화에서 이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스승의 날이라는 말 때문인지 낯설지만도 않다.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 ‘스승’에는 ‘선생’에게 없는 진심 어린 존경이 담겨있다. ‘교사’나 ‘교수’에는 없는 따뜻함이 있다. 스승은 그렇다.고맙게도 내게는 스승이 참 많다. 중학교, 나를 사랑의 매로 가르친 스승이 있었다. 매섭게 혼내셨지만, 제자들을 혼낸 날에는 온종일 우울해하셨다.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에 묻고 계시더라. 대학교, 학생 하나하나를 모두 존중하는 스승이 있었다. 아들뻘 학생에게 아직 존댓말을 쓰신다. 나열하면 끝도 없다. 나는 스승들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 이 순간도 배운다.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
안녕 혜원아. 그곳에서는 잘 지내고 있니? 예쁜 말들을 골라서 해주던 너였으니까 예쁜 마음으로 사물을 보던 평소 너의 방식대로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 카톡 해서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 것 같고, 부르면 달려와 줄 것만 같은데 부르면 답 없는 너의 카톡이 어색하기만 하다.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장례식장을 가던 아침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장례식’이라는 의식에 걸맞은 옷이 없어서 한참이나 고민했었어. 처음으로 친구를 떠나보내는 거라 어떤 얼굴로, 어떤 복장으로,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하더라.처음 너의 소식을 네 동생을 통해 들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나. 동생이 너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줬을 때 나는 계속해서 되물었어. 정말
신문 편집에서 손을 막 뗀 내 눈길을 끄는 건 고전이다. ‘대학생이니 고전을 읽어야 해!’라는 대단한 생각에서 출발한 건 아니었다. 보고 있던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 한 책이 몇 차례 언급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자극적이지 않은 진짜 뉴스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를 돈키호테에 비유하니 멋있어 보이더라. 그래서 며칠 전부터 이 『돈키호테』를 읽고 있다.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참 모호하다. 인물에 대해 곱씹게 된다. 허구로 기사 서품을 받은 이 사람을 기사로 봐야 할까? 그걸 떠나서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며 돌진하는 이 사람을 그저 과대망
#1‘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직업이든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수능 때까지 핸드폰이 없었던 내겐 신문과 방송의 힘이 그만큼 강력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세상을 바꿀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글을 쓰든 리포팅을 하든 기자가 돼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에 기자가 되는 것은 나의 꿈이 됐다.#2오랜 역사를 가진 연세춘추에 들어와 기자가 됐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반 학생으로서는 접하기 힘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 끝에 나의 꿈은 ‘기자
어린 시절, 나의 꿈은 그럴듯한 직업이 아닌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그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이 꿈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녔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닌 그에 걸맞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시간이 흘러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됐다. 막상 맞닥뜨린 어른은 허무하고 시시했다. 내가 어린 시절 가진 그 꿈을 이룬 건지, 잊어버린 건지를 생각하기엔 어린 시절 꿈의 의미가 너무 모호했다. 그렇게 그냥 어른이 됐다.좋은 어른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난 후부터다. 『나의 아저씨』는 우리가 사는 삶의 차갑고 무거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드라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드라마가 전
커뮤니티 사이트인 ‘워마드’에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중 몰래 촬영된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이 올라왔다. 불법촬영 사진에서 남성의 성기뿐 아니라 얼굴마저 드러나며 개인 신상정보가 유출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워마드 회원들은 이 남성 모델을 대상으로 성적 희롱을 하며 2차 피해를 줬다. 이후 게시글이 논란이 되며 원본은 삭제됐지만 이미 게시글은 퍼진 후였고, 남성 모델은 상처를 받아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이번 불법촬영 사건을 통해 필자가 취재했던 기사가 생각났다. 필자가 기자로 활동하던 지난 2017년 신촌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한창 불법촬영 범죄가 화두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이 불안에 떨던 시기였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불법촬영이 신촌 한복
2년 6개월. 24살에 시작한 대학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학보사에 몸을 담았다. 동년배 친구들은 한참 전부터 사회의 길을 걷고 있고, 학교 동기들의 취업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온다. 서른을 앞둔 지금까지 학보사에 있으며 얻거나 느낀 것이 무엇인가.# 1. 동료의 한마디필자는 무지한 사람이다. 1년 즈음 된 사건이다. 동료들 사이에서 중국 음식을 시켜먹자는 의미로 “짱개 시켜먹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동료가 날린 따끔한 일침에 입술을 세게 내리쳤다. 그렇다. 무심코 뱉은 한마디는 필자가 좋아하는 래퍼들이 받았던 억압과 같았다. 묵직하고 웅장한 비트에 한 줄 한 줄 읊조리는 그들의 외침에 공감하며, 타인을 비하하는 말을 무심코 내뱉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당신도
나는 ‘사수생’이었다. 재수생, 삼수생도 아닌 그 이름조차도 낯설기만 한 사수생 말이다. 노량진 밤거리를 하염없이 거닐던 그때의 나는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등 뒤로 들려왔던 말. “괜찮아. 그 노력의 시간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스물셋의 나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학업, 대인관계에 치여 한 치 앞도 안 보이다가도 문득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백양로라는 걸 상기하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물론 사회에는 훨씬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 더 큰 성취를 얻은 사람도 넘쳐난다. 그들 모두 ‘축적’의 시간을 통해 저마다 값진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다.
요즘 사회를 바라보고 있자니, 튤립투기에 대한 영화 『튤립피버』가 떠오른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바니타스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는데, 요즘 다시 이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7세기의 네덜란드와 지금 우리 사회가 매우 유사해 보인다. 당시 네덜란드는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으로 부푼 튤립투기 열풍에 편승한 사람들로 가득했다.물질주의의 무의미함이 당시 사회상으로 반영됐고, 바니타스화는 이를 표현했다. 화가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해골, 모래시계, 촛불, 꽃등을 소재로 사용했다. 이 소재들은 각기 다른 저마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해골은 생명을, 모래시계와 촛불은 시간을, 꽃은 젊음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무의미한 것들. 바니타스화는 꽃을 시든 꽃으로, 촛불은 불이 꺼져 있도록
인터넷은 여전히 미투(#Me Too) 이야기로 뜨겁다.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지만, 각계각층에서의 미투 외침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고, 이를 응원하는 위드유(#With You) 목소리 또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미투 운동의 도화선은 지난 2017년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파문이었다. 그가 권력을 이용해 이어온 30여 년간의 추악한 성범죄는 미투를 통해 세상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시작된 미투 운동은 한국의 민낯을 고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그 이후 오늘도 여전히 피해자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성이 권력을 이용해 상대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