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쟁취!” 지난 1987년 6월 9일, 노천극장에는 군부독재를 규탄하는 연세인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가 습관처럼 드나드는 백양로의 정문은, 경영학과 86학번 고(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던 곳이다.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계속 짓밟아도 자꾸만 싹을 틔우는 들꽃처럼, 민중은 군부독재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리고 연세인은 민중을 이끄는 데 앞장섰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지식인으로서의 사
독립과 함께 경기도민으로 살게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학교와 집을 오가느라, 서울 이곳저곳을 쏘다니느라 대중교통에서 보낸 시간도 적지 않게 된 것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40여 분간의 긴 귀가를 위해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였다. 문득 버스 안을 울리던 목소리. 도착지를 알리는 정갈한 안내방송과는 다른, 조금은 투박한 목소리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승객 여러분 모두 걱정과 슬픔은 이 버스에 내려두시고, 편안히 귀가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어서 나온 영어까지.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사님은 직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수신료 인상을 계기로 표출된 것에 가깝습니다. 수신료 문제의 이면에 집중해 공영방송의 역할과 가치를 바로 세우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1900호][시사 바로쓰기] 매월 2천500원, 수신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지난해 10월,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사바로쓰기를 발행하며 공기업의 방만경영 문제에 처음으로 직면했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공공성,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 실태는 큰 문제로 다가왔다. 문제는 공영방송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당신은 연인, 연인의 이성친구 A와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있다. A가 깻잎을 먹으려고 하지만 깻잎 여러 장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 상황. 이때 연인이 A의 깻잎을 떼어 준다. 당신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 지난 2021년 말부터 유행하고 있는 ‘깻잎 논쟁’의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연인이라면,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애정의 상실을 느낄 만한 행위를 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샘이 많았던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답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인 연애관을 떠나 깻잎 논쟁
‘내 인생 반 고비에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단테, 『신곡-지옥』 가을, 봄, 가을, 봄 그리고 가을, 우리신문사에 재직하는 동안 교정은 무수한 변화의 교차점이었다. 응원곡 ‘파란’ 가사에 기대어 파란이 지워진 교정을 주제로 수습기자 로테이션 과제를 수행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졸업 전 우리 교정은 푸른 청춘의 열기가 가득해졌다.‘그 어떤 것도 우리가 당연하게 취할 것이란 없다’라는 참으로 진정어린 이치를, 지금처럼 가슴으로 짙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매년 11월과 이듬해 4월에는 학생회 선거가 열린다. 그러나 선거본부와 그들의 공약은 주변의 많은 고학번 친구들의 눈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런 공약을 가져왔어?’라는 말도 많이 하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학생회에 출마한 대부분은 아마추어다.여러 학기에 걸쳐 몸담았던 학생사회를 떠나는 시점에 과거를 돌아본다. 매년 다른 직책을 갖고 활동했지만, 항상 드는 생각은 ‘나는 아무것도 몰랐구나’ 하는 것이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다. 많은 친구가 ‘그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흘러가듯 일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다시 돌아가면
청년의 범주, 그 정의의 범람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오른쪽 여백 11.3을 맞춘 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일이 제법 낯설다. 십계명을 쓰기 위해, 그리고 지난 4학기의 춘추 생활을 돌아보며 그간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기사들을 찬찬히 읽어봤다. 청년 독자층을 상정하며 ‘대학사회와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달고 새로 태어난 『The Y』는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매체였다. 정체성을 그대로 살린 커버스토리부터 MZ세대들의 트렌드를 알아보는 MZ돋보기까지. 다각도로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자 고군분투했다. 여러 취재원, 다양한
“원래 명문대 나온 사람들은 사업을 못 해요.”3년 전, 크라우드 펀딩 교육에 참여했던 내게 초면인 A씨가 했던 말이다. 당시 나는 가벼운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운 좋게 전문적인 교육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그 첫날, 갑작스럽게 나를 공격하는 A씨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고야 말았다. 참석자들끼리 모여 사담을 나누던 중 누군가 내 프로젝트를 두고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한다고 했죠?”라고 물은 것이 발단이었다. “직접 발로 뛰어 봐야 감이 생기는데, 탁상 공부만 한 사람들은 그걸 못 하거든.” A
“종이신문은 언론수용자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급격하게 쇠락한 매체로,약 20년 전에는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가, 10년 전에는 절반이 종이신문을 이용했으나이제는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이용하고 있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언론수용자 조사』 종이신문을 만들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아프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얘기다. 우리신문사 역시 이 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면 학기에 학교를 다니며 바로 옆에 놓여 있어도 잘 열어 볼 일이 없던 학보사 신문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학생들의 발길이 끊긴 학내에서 다시 한번 그 자리를 잃었다. ‘연세춘추사’라 적힌 현판이 붙은 편집국 문 앞에는 기자들과 금요일 밤을 새우며 만든 신문이 포장도 풀어지지 않은 채 쌓여있다.
“기권, 기권, 기권”우리신문사 보도1부 기자들은 매주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 출석해 회의를 참관한다. 언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된 것인지 몰라도, 학생 사회의 의제를 가장 빨리 포착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운위에는 으레 다루는 인준 안건뿐만이 아니라 학내 단체로부터의 연서 요청도 상정된다. 그러나 지난 2020학년도 중운위에는 기권이 참 많았다. 사유는 정치적이거나, 총학생회(아래 총학)의 역할이 아니거나,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연대해 달라는 요청, 3구역 청소용역업체 코비를 규탄해 달라는 요청, 등록금 반환을 위해 대학들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진행하자는 요청 등이 기권표를 받고 중운위장에서 물러났다.당시 이 ‘기권’을 두고도 비겁하다고 비판하는 사
시간은 상대적이다.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흐름은 중력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지구에서는 높이에 따라 중력이 달라지므로 매우 높은 곳에서는 낮은 곳에 비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이론의 영역에 머물렀던 이것은 최근 실험을 통해 사실임이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사실 높이에 따른 시간의 차이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실생활에서 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160억 년에 1초밖에 차이 나지 않는 ‘광격자시계’라는 것을 실험에 이용해야만 할 정도다. 하지만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사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사람들 사이에는 지위나 상황에 따른 급
사람마다 생각하는 ‘책임’의 의미와 정의는 다르다. 또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렇지만 내가 느낀 ‘책임’은 ‘희생’이었다.대부분의 기자는 우리신문사에서 수많은 취재와 현장을 경험하면서 내적 성장을 이루기도 하고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닫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었고 현재도 그렇다. 하지만 나의 짧은 기자 생활에서 ‘책임에서 비롯된 희생’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우리신문사에 입사한 지 4학기째, 두 명의 동료 기자의 퇴사를 겪었다. 동료 기자의 퇴사는 단순히 업무 증가가 아니다. 한배를 탄 동료의 갑작스러운 탈선은 심적으로 큰 공백이 된다. 그 탈선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퇴사를 결정하는 기자는 죄책감에 티를 낼 수도 없고,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한다. 부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누
어릴 적부터 기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글’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나를 꿈꾸게 했다. 「연세춘추」에서 대학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가장 중요한 행위는 타인을 향한 ‘관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스로를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오만이었다. 그동안 진정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설령 관심을 갖더라도 내 주위를 둘러싼 작은 세계였을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우리신문사는 타인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인터뷰할 때였다. 손희정 문화평론가와 이야
‘선 넘는다’는 말, 최근 들어 많이 보인다. 인터넷 댓글을 넘어 드라마 대사, 기사 제목까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밈(meme)은 사회를 보여주고, 동시에 만든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집단으로 선택되고 실천되는 선호를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선택된 언어는 반대로 그것을 선택한 발화자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어법이 강요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게 된다. 에크리튀르에는 사회 집단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이데올로기가 녹아 있는 셈이다. 여기서 에크리튀르는 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 등장하는 밈은 모방으로 복제되고 전수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집단이 어떤 것을 선택해 모방하는지, 즉 어떤 것이 ‘밈’으로 채택되는지에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
2013년 3월 11일, 1면을 백지로 한 호외가 발간됐다. 학교의 갑작스러운 ‘연세춘추비 선택납부제 전환’ 통보에 따른 대응이었다. 「연세춘추」 및 『연세애널스』는 입장문을 통해 대학언론이 유례없는 운영난으로 존폐위기에 처했음을 호소했지만, 자율경비 논의 과정에 학생 기자의 의견이 반영될 기회는 없었다. 턱없이 부족한 2013학년도의 예산은 이듬해 바로 적자로 이어졌다.7년이 흘렀다. 자율경비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했던 그해의 열기는 식어 잊혀 가지만, 「연세춘추」의 재정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선택납부제로 전환한 첫 학기, 14%에 불과했던 연세춘추비 납부율은 근 3년간 1학기 4~5%, 2학기 1~2%만을 유지하고 있다. 1996년부터 16년간 동결됐던 연세춘추비 5천900원은 선택납부제 전환 당
보도부장 첫인상보도부장으로서 겪은 첫 단독 제작 주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터지는지...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다.시즌2 마지막 주차는 부장과 기자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처음 하는 업무인 데다 처음 겪는 일도 많았다. 취재를 거절당했고, 일면도 없던 취재원으로부터 우리신문사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도 들었다. 한번 자리 잡은 인식을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느냐마는 독자와의 신뢰를 쌓아야 할 것 같았다.부장으로서 처음 사과도 했다. 동료 기자에게 학생대표자 정기 회의에 우리가 참석해도 괜찮을지 알아보라고 한 게 화근이었다. 학생대표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우리 기자가 무례했다며 당혹스러움을 표출했다. 기자가 취재 차 참석 의사를 통보식으로 전한 것에
칼바람이 살을 에기 시작한다는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다. 올해는 수능이 12월로 미뤄졌지만 대대로 11월이야말로 수능의 달이었다. 크리스마스나 명절 같은 설렘도, 매달 있는 공휴일조차 없는 무채색의 11월에 수능은 ‘강철로 된 무지개’처럼 예정돼있다. 나는 2018년 11월에 수능을 치렀다. 2년이 지나도 그때의 기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고 매년 11월이 되면 ‘아, 누군가의 밤은 참 길겠구나’, 마음이 동하고 만다.마음을 졸이고 있을 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으나, 긴장을 덜 수 있는 비법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나는 수능 보기 1년 전부터 떨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한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웠다. 수능 점수를 올려준다고 해도,
영화 『인사이드아웃』은 어른들을 울리는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은 각각 기쁨과 슬픔을 형상화한 ‘기쁨이’와 ‘슬픔이’다. 초반에 슬픔이는 언제나 우울한 모습으로 기쁨이와 관객들을 답답하게 한다. 슬픔이가 행복을 방해한다고 믿는 기쁨이는 분필로 큰 원을 그려 슬픔이에게 그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될수록 기쁨이는 삶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슬픔이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로 우리 삶을 끌어안는 건 기쁨이 아닌 슬픔이기 때문이다.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영화를 보고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가 떠올랐다. 시는 영화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나’의 슬픔을 넘어 ‘남’의 슬
“너무 많은 것이 변했음을 말하려니 내가 이미 달라져 버렸음을 생각하지 못했다”사진으로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것과 굉장히 닮았다더라. 혹여 그들의 살랑거리는 꼬리가 먼저 내 다리를 감싸고 돈다 해도, 그날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비릿한 냄새의 생선을 꺼내 든다면 고양이는 내 의도대로 곁에 다가오기 쉬워지겠지만, 그 순간부터 변할 무엇인가를 감당해야 한다. 지나가는 그 작은 발걸음이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가만히 지켜보던 나였다.내가 카메라를 들던 때, 목에 건 스트랩은 마치 나의 숨통을 옥죄는 올가미 같았다. 순간을 담는다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이지만, 찰나의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될 의무가 전제됐다.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 크레딧 앞에 얼굴을 붉히기 싫었다.
또 한 번의 개편이다. 지난 7일, 『The Y』는 거의 모든 코너를 개편한 혁신호를 발행했다. 지난 1학기에 ‘신촌 지역지’에서 ‘청년·대학사회 매거진’으로 매체 정체성을 바꾼 데 이어 두 학기 연속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한 셈이다. 잦은 개편이 불안정한 매체 상황을 의미하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지만, 매번 이번이 마지막 개편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리고 이번 개편으로 앞으로 1~2년 동안은 큰 폭의 변화 없이도 안정적인 발행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The Y』를 개편할 때마다 참고할 자료가 전무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이 주제를 매체 정체성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지, 이 코너를 만든 의도는 무엇인지 등 『The Y』를 창간한 선배들의 본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더 확실한 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