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춘추』 칼럼인 ‘시선’의 기고 요청을 받고, 상념에 잠겼습니다. 연세 공동체 구성원들과 어떤 생각을 나눌까 고민하다가, 시선이 머무는 곳과 그곳을 바라볼 때 떠올린 생각 조각들을 연세 공동체 모두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열해 봅니다.첫 번째 조각 ‘종합대학’. 종합대학(University)은 단과대학(College)이나 기관(Institute)과는 다르긴 다를 텐데,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예를 들어, 한국과학기술원은 “과학 인재 양성과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과학기술 연구 수행을 위해 설립된 대
대부분의 윤리적 행위 원칙은 의무론과 결과론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의무론적 원칙은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상관없이 마땅히 해야 하는 행위인지를 판단한다. 반면 결과론적 원칙은 행위가 타인이나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로 행위가 윤리적인지 판단한다. 두 원칙은 윤리성 판단의 언어가 다르며 좀처럼 화해하기 힘들다. 의무론적 원칙의 대표적인 예로는 개인의 ‘자유’를 들 수 있고, 결과론적 원칙의 예로는 ‘공익’을 들 수 있다. 자유가 지나치면 공익을 해치고 공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인은 억압 당한다. 전 세계는 기나긴 코로나
연구하고 글 쓰는 직업인으로서, 읽기의 윤리를 정해두고 있다. 쓰기에 앞서 많이 읽을 것. 창의성에 대한 몸의 감각을 돌볼 것. 이건 스스로에 대한 강제가 아니라 즐거운 약속이다. 쓰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도 중요하기에 의무에 강박 되기보다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독서하면서 밑줄을 긋는 것은 공감의 표현이자 작은 ‘유레카!’의 신호를 몸으로 전하는 행위다. 당연히 여백에 낙서도 한다. 이런 책들은 되팔 수 없다. 책들은 책장에 일정 기간 꽂아두었다가, 정기적으로 정리한다. 공간이 한정적이니 생존을 위해서도 버려야 한다. 책 먼지와
빠르다. 그리고 비밀이 없다. 요즘 시대의 특징이다. 어딘가에서 발생한 일이 전 국민에게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수분이면 족하다. 모바일을 타고 포털과 SNS, 유튜브를 통해. 여기에 5G 속도까지 더해져 전파 속도와 범위는 무한대다. 이는 앞으로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문제는 정확도다. 속도와 정확도는 반비례한다. 그 이유는 검증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문이 검증과 취재할 틈도 주지 않고 팩트 행세를 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발 없는 말이 천리만 가면 다행일 텐데 이제는 포털과 인스타, 유튜브로 간다.지
남의 ‘대한민국’과 북의 ‘조선’이 통일되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남쪽은 대한민국을 선호할 것이고 북쪽은 조선을 선호할 것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과 조선이 아닌 새로운 이름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을 정하기에 앞서 과거 우리나라는 어떻게 나라의 이름을 지었나 살펴보겠습니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많은 이름이 있었는데 한 가지 특징이 보입니다. 똑같은 나라 이름을 여러 번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나라 이름 가운데 한 번만 사용된 경우는 신라, 가야, 마진, 태봉, 발해 다섯 가지 정도입니다. 두 번 사용된 나라
“부동산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잘 아는 사람도 없다”라는 이야기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농담이다. 그만큼 부동산에 대한 이해와 부동산 시장 전망이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요즘은 신문과 뉴스뿐 아니라 각종 소셜미디어에서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과 분석을 내어놓고 있다. 부동산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부동산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우리 삶에서 부동산은 왜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2022년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평균 자산은 약 5억 4
짊어져야 할 것은 짐만이 아니다. 한 문장이 있다. 명치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파도치는……. “아마 나 자신도 우리의 생을 망쳐놓은 만큼 스스로 망가져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지금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나의 비극이다.” 정현종 시인의 산문 「말의 살」의 일절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학생들과 함께 읽는다. 아니, 진다. 혼자는 평생을 져도 다 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먼저, 나에게 비극이란 성공의 대척점, 곧 ‘실패로서의 비극’으로 존재함을 고백해야겠다. 성공하는 것만
출산율 저하, 학령인구 감소, 지방소멸 등의 국가적 난제는 한국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뒤흔드는 당면 문제이자 앞으로 수십 년후 우리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현안이됐다. 유치원의 폐원 증가에서부터 대학생 정원 미충원 심화, 경고등 켜진 지역사회 소멸 위기, 가팔라지는 연금 기금소진 전망에 이르기까지 인구 감소 여파는 이미 우리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밀려드는 해일을 목전에 두고 발만 동동거릴 뿐 그동안의 대처는 무효하고 수긍할 만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은 지난 1979년
챗GPT의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출간된 책 제목들이다. “챗GPT 마침내 찾아온 특이점”, “챗GPT AI에게 인생을 묻다”, “챗GPT 이미 시작된 미래”, “ChatGPT 인공지능 융합 교육법” 등. 이 시점에 다음의 두 질문에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첫째로, 인공지능은 완전해질 수 있는가? 인공지능의 이론적 토대는 튜링(Alan Turing)의 1936년 논문이다. 이 논문의 배경이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인데, 그 내용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는 수학 진술이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수학체계를 꿈꾸던 수학자들은 좌절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 속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은 생각 속에서 존재한다는 말은 인간은 언어 속에서 존재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은 Dico, ergo sum(나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으로 고쳐 말할 수 있다.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몸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각과 언어만 갖고 있다고 해서 인간일 수는 없다. 철학자 장-클로드 밀네르(Jean-Claude Milner)가 말했듯, 인간에게 몸은 자신을 식별하
캠퍼스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캠퍼스를 수놓았다. 하얀 목련과 매화, 노란 개나리와 산수유, 분홍 진달래와 벚꽃이 연둣빛 잎과 어우러져 반가운 봄을 알리고 있다. 캠퍼스를 거닐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싱그러움과 맑은 향기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 어찌 그 춥디 추운 겨울을 버텨냈는가 괜히 대견스럽기도 하다. 이 꽃들이 세상에 기쁨과 쓰임이 되기 이전엔 분명 인고의 세월이 있었으리라! 이것을 깨닫는 순간 꽃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한 송이의 꽃이 피는 지난한 과정은 나에게 대한민국 외교의 성장 과정을
외솔관에서 같은 층에 연구실을 쓰는 교수님으로부터 주말에 카톡이 왔다. 세계문학전집이 스무 권 남짓 찍힌 사진과 함께. 무엇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 추천해 달라고 했다. 독서야말로 취향을 타는 것이지만, 나는 그것까지 감안해서 내 멋대로 추천해 드렸다. 서사가 짧은 것과 긴 것, 문장이 함축적인 것과 담백한 것, 19세기 고전과 21세기 신간, 아시아와 서양의 것을 섞어서, 안단테, 포르테시모의 독서 리듬을 고려한 순서대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앞에 두고서 무엇을 먼저 읽을지 고민하다니, 풍성한 성찬을 마주한 것처럼 마음이 좋았다.
「연세춘추」는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킨 고마운 존재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젊은 그대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필자는 지난 1996년부터 지방대학에서 전임교원으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수많은 글을 썼지만, 「연세춘추」에 글을 쓰는 일에 무게감을 느낀다. 세상살이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시장 구석에서 묵묵히 구두를 닦는 분보다도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총장을 지낸 분들이나, 유명한 교수님들의 글도 엉터리가 많다. 필자의 글도 십중팔구 엉터리일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숲은 수렵 민족의 공간이었다. 만주의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 일대에 거주하는 퉁구스 계통의 민족들은 숲에 기대어 사냥하며 살았다. 남북으로 약 1천200㎞에 달하는 다싱안링 산맥은 만주와 몽골을 갈랐고, 북방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그곳에서 에벤키족이나 오로첸족, 다우르족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하지만 중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숲을 버리고 산 아래로 이주해야 했다. 정부의 정책이 그러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손에 든 사냥용 화승총을 내려놓아야 했다. 수렵 민족이 도시로 내려왔으니
우리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Underwood International College, 아래 UIC)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을 통해 한국 고등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정한 직업 능력이나 전공에 치중한 교육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학문 소양과 함께 비평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한 지식인으로, 인문학과 연구방법론 기반을 함께 갖춘 지도자로 키우는 리버럴 아츠 교육을 강조하는 고등교육기관을 이 땅에 최초로 세운 본격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885년 우리대학교가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 대학의 역사를 열었다면, 120년이 지난 2005년 우리대학교 내에 UIC가 출범함으로써 리버럴 아츠 교육이라는 새로운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을 우리나라와 아시아에
원주에서 아침 일찍 신촌캠으로 와 미팅을 한 후 학창 시절을 보냈던 중앙도서관에서 교수가 아닌 학우의 마음으로 이 칼럼을 쓴다. 칼럼 시작 전에 연세대 전체 교직원 수양회 폐회 설교를 맡은 강승일 원주교목실장님의 설교 말씀이 가슴에 닿아 인용한다. “누가복음 6장 31절은, 소위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이 말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배려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인관계의 가장 중요한 원칙과 자세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이 세상에 나아가서 역지사지에 사랑을 더해 실천한다면, 우리 세상은 황금률의 정신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 연세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
정의기억연대(아래 정의연)와 관련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마침내 검찰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 문제는 정의연이라는 일개 시민운동단체의 부패에 대한 의혹만이 아닌 민족사적 시민운동의 성격과 나아가 우리나라 시민운동 역사에 커다란 분기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일단 정의연 사건은 현재까지의 의혹만으로도 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문제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우선 정의연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로부터 직접 비판을 받았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한 분으로부터, 또 이번은 이용수 할머니로부터다. 할머니들은 일제의 비인도적 폭악성에 의해 그리고 정의연에 의해서 다시 배신을 당했다. 이들은 초·중등 학생의 코 묻은 기부금마저 회계에서 누락시키면서 단순 실수라고 강변하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들르던 종로서적은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끝이 없는 책의 바다였고, 원 없이 실컷 책을 펼쳐볼 수 있었다. 당시 꿈은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학교 안에 도서관이 있었다. 한 책을 빌리고 또 다른 책을 빌리고... 꿈은 바뀌어 도서관 사서를 향했다. 요즘처럼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기에 가져봄직한 장래희망이었을 수 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부자가 아니어도, 내가 학식이 높은 사람이 아니어도 그 공간에서 나는 최선의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도서관은 그렇다. 특히 대학도서관은 더더욱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 교수이건 학생이건, 인문학도이건 공학도이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이용하는 자원과 제공받는 서비스는 공평하며 이용자 지향적이
지난 4월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패스트트랙 대치정국’은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법 등 검찰 개혁안의 안건신속처리제 지정을 둘러싸고 여야 4당과 제1야당 사이에서 벌어졌다. 의석배분의 비례성을 일부 강화하는 소위 준연동형 선거제도 도입과 공수처 설치법에 제1야당이 반대하자 여당과 기타야당은 신속처리제 지정으로 대응했다. 이를 제1야당이 물리력으로 저지하면서 사태가 초래했다.제1야당 측은 정치지형을 바꿀 선거제를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것은 여야합의로 진행되던 민주화 이후 관행을 위반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여야 4당은 민주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선거제개혁과 검찰개혁을 무한정 지연시킬 수 없어 국회법에 따라 의정을 진행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양쪽 다 나름의 논거와 약점이 있지만, 헌법 기본정신이나 주
최근 법관징계 문제로 법조계가 시끌벅적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법관사찰 문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만든 이탄희 전 판사는 법관 10명 추가 징계 청구와 관련해 해당 판사의 명단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 전 판사는 “재판받는 국민은 사건을 맡은 판사가 징계 명단에 포함돼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근저에는 국민의 알 권리가 있다. 알 권리란 정보에 대한 접근, 수집, 처리하거나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자유는 전통적으로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를 의미한다. 그중 앞의 것은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전제로 한다. 자유로운 의사 형성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