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을 마치며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다 기자직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어릴 적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기도 했고, 사익보다는 공익에 직결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사건·사고, 역사의 최전방에서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기자가 제격이었다. 지위, 직업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자유자재로 만나고 세상 이곳저곳을 원하는 대로 헤집고 다닐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이에 기자라는 뜻을 품고 『연세춘추』에 들어왔다. 대학 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연
내가 열아홉살 때도 난 스무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모두 다 무언가에 떠밀려 어른인 척 하기에 바쁜데나는 개 나이로 세 살 반이야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아-검정치마 「강아지」 中 “기자님이라니. 압존법 모르니?” 지난 2월, 첫 편집회의에서 편집인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말을 이어가던 나는 당황해서 그만 말을 멈췄다. “군대 아직 안 갔으면 압존법이 익숙지 않죠, 뭐.” 동료 기자가 다행히 나를 대신해 말을 이어나갔다. ‘압존법’은 대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존대 여부를 화자가 아닌 청자를 기준으로 하는 어법이다. 편집인 교수님과
나는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입바른 소릴 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낙향했다는 가문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계란으로 바위 칠 수 있는 사람, 모난 돌로서 정 맞을 수 있는 사람,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다. 떳떳하게 정의를 논하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젊은이가 되고 싶었다. 10년 전에 고등학교 은사이신 강문선 동문(국문·76)에게 『연세춘추』 기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그 꿈의 연장선이었다. 반면 이 꿈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내게 비겁한 인간의 표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겐 ‘정민석’(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민석이는 축구와 역사를 좋아해 관련 지식이 해박했다. 관심사가 겹쳤던 나는 민석이와 여러 주제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민석이는 목표하는 대학이 있었다. 그러나 민석이는 관심사인 사회 과목 말고는 성적이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다. 아마 그 성적으로 목표하는 대학에 가려면 기숙학원에서 제법 고생해야 할 터였다. 그럼에도 민석이는 목표하던 좋은 대학에 한 번에 합격했다. 민석이의 대학 합격 소식이 알려진 후, 반 친구가 갑자기 내게 와 민석이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
할아버지께서 한 카페에 취직하셨다며 빙수 먹으러 오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던 날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한라산쯤은 성큼성큼 뛰어서도 올라가시고,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커다란 알통을 자랑하시는 분이었다. 체력도 체격도 젊은이에 뒤지지 않는 할아버지였던 지라 할아버지께서 사회인으로 역할하기를 그토록 바라셨다는 것을 그날에서야 알게 됐다. 손녀딸이 일터에 찾아오면 빙수 한 그릇 멋지게 만들어 내어주겠다는 마음이 담긴 그 환한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작년 이맘때쯤 생각보다 너무 이르게 우리 곁을 떠나
언제부턴가 뜨거운 여름이 되면 횡단보도 양 끝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파라솔이 설치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번쯤 이용해 봤으리라. 그렇다면 파라솔 밑에서 당신이 더위를 피하는 데 지불하는 비용은 얼마인가? 정답은 ‘무료’다. 당신이 파라솔 밑에 모여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해도, 당신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파라솔 밑에 서 있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들이 막을 방법도 없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각각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 부르고, 두 가지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재화를 ‘공공재(publ
“1994년 가을,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그리고 오늘, 당신은 누구입니까!긴 세월에도 포기하지 않고 간직해 온 가슴속 깊은 곳의 외침! 29년 만의 메아리!2023년 통합우승 챔피언은 ‘LG 트윈스’입니다!”- MBC 김나진 캐스터 한국시리즈 우승콜 中 지난 13일, 한국 프로야구 구단 LG 트윈스(아래 엘지)가 ‘2023 신한은행 SOL KBO 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KT 위즈를 꺾으면서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엘지는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창단 세 번째 우승을 맞이했다.그간 엘지는 ‘엘롯기’라
나는 연세춘추 보도1부 기자다. 신촌캠 내 사안을 발굴해 신문을 발행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1부를 포함해 우리신문사에서 잘 보도하지 않는 사안이 있다. 바로 ‘캠퍼스 문제’다. 우리신문사에는 신촌캠 학생과 미래캠 학생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캠퍼스 문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기사를 쓰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연세춘추의 주 독자층인 신촌캠 구성원들의 눈치도 보게 된다. 지난 9월, 정기 연고전 전후로 연세대와 고려대의 지방캠 혐오 논란이 기성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캠퍼스 문제에 대한 기사는 쓰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제1921호 2023년 11월 13일. 『연세춘추』는 오늘로 1천921번 발행을 거듭했다. 창간 이후 89년 동안 연세춘추 기자들은 발행에 대한 ‘사명’ 하나로 1천9백 번이 넘는 긴 제작에 늘 함께했다. 90년이 거의 다 돼가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신문사는 많은 우여곡절과 변화를 겪었다.『연세춘추』가 한때는 전성기를 맞이해 ‘잘 팔리는’ 신문이었던 적이 있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군부독재 시기에 『연세춘추』는 없어서 못 읽는 신문이었다. 그러나 『연세춘추』를 찾던 1980년대와 90년대 즈음의 독자들은 학내에 거의 남아있지
K-POP 시장은 빠른 시간 동안 성장했다. 한국 가수의 음원이 빌보드 차트에 올라가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K-POP의 주축이 되는 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무조건적인 극성팬을 의미하는 ‘빠순이’ 그 이상이 아니다. “나 공연장에서 쫓겨났어.” 지난 10월 15일 K-POP 공연을 보러 파리에 방문한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당황하기도 잠시, 각종 SNS에 파리에서 진행된 M사의 한 음악 방송에서 팬들이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공연장 내부에서 카메라 촬영에 대한 단속이 과도
학생 민주화운동이 시들해진 이후부터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학생사회가 무너진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한참 전에 무너졌다는 학생사회가 오늘도 조금씩 더 바스러지고 있음을 본다.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침체했던 학생 ‘자치’는 대면 학사로 전환됨에 따라 오히려 되살아났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단(아래 총학 비대위원장단), 단과대와 총동아리연합회 회장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화요일 새벽까지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 자리를 지킨다. 약 80명의 학생대표자가 모이는 확대운영위원회(아래 확운위
“역사 속에서 잡지는 시대 의식과 여론 형성을 견인하고 지식정보의 중요한 공급원 역할을 한다. 또한, 여전히 다양한 이슈와 주제를 담아 역사와 문화가치를 전달, 기록, 보존하는 잡지는 지식 콘텐츠의 보고(報告)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립중앙도서관 ‘근현대잡지 특별전’에서 한 벽면에 적혀있던 문구다. 내가 매거진을 절실히 사랑하게 된 시작점이기도 하다. 지난 2022학년도 2학기, 반년 동안의 수습과정을 거친 나는 매거진부의 부기자가 됐다. 매거진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었다. 국내 유수의 학보사 중 우리신문사만 유일
우리나라는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 취지는 국가가 저소득층에게 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제공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2월 말 수급자 수는 236만 명으로, 전 국민의 4%가량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 평가받는 것과 별개로 이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득인정액, 부양의무자 조건 등 수급권자 판정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해묵은 논쟁거리다. 기준은 좀처럼 변경되지 않은 채 테두리
단과대 및 학부 개편,무전공 자율융합계열 통합 모집,소프트웨어·데이터사이언스·디지털헬스케어 학부 신설,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 선정,...“글로컬대학30 예비지정 15개 대학 선정” 믿기 힘들겠지만,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대학교 미래캠이 겪은 변화다. 우리대학교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우리신문사 보도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학교의 발전 방향을 함께 고민해 왔다. 학생기자 활동을 지속할수록 우리대학교가 그리는 그림이 어떤 그림일지, 얼마나 큰 그림일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학령인구 감소와
“미래캠은 원래 안 됩니다”“지역안배의 측면에서 미래캠은 어렵습니다”“내정된 국책사업입니다” 지난 5월, 우리신문사 보도2부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취재원에게 들은 말이다. 1년이 넘도록 보도부 기자로서 우리대학교 미래캠의 ‘캠퍼스 혁신파크 조성사업’(아래 혁신파크 사업) 공모를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다. 해당 사업의 수주여부가 ‘2018년 역량강화대학’ 선정의 아픔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혁신파크 사업은 4년 차를 맞았다. ▲교육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 진행하는 해당
지난 5월 31일, 고요한 새벽 공기를 날카롭게 찢어내는 경보에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사위가 밝아오던 새벽, 경보의 내용은 평화로운 일상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 특별시]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참이나 문자메시지를 뻔히 바라봤다. 잠들기 전까지 만해도 평소와 다름없던 무수한 날들 중 하나가 저물었고, 급히 창문을 열어 확인한 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공포감이 들기도 전, 해당 문자가 진실
지난 2022년 11월, 카타르 월드컵이 개최된 그해 겨울은 내게 여름 못지않게 뜨거웠다. 새빨간 붉은 빛의 야생마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푸른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정적인 삶을 살아왔던 내 눈에, 그들은 나의 영웅이었다.순탄치만은 않았던 일정이었다. 우루과이전 무승부, 아쉬운 가나전 패배까지. 그럼에도 나의 영웅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라커룸에서 흘린 눈물을 딛고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던 선수들은 뒷심을 발휘해 끝까지 포르투갈을 상대했다. 지난 2006년 이후로 꾸준히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경우의 수’ 역시 다시금 등장했다. 나와
5월은 제법 이상하다. 가정의 달이라는 큰 줄기 아래,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그 이름도 참 따뜻한 날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생명이 소생하다 못해 조금은 더운 바람까지 부는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다 보면, 문득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닌가 선득한 기분이 들곤 한다.43년 전의 그날도, 틀림없이 따사로웠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오늘은 우리의 날이라며 5월 내내 거리를 쏘다녔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달아드릴 카네이션을 전하러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5월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빠 연락 한
“숫자로 대답해 주십시오” 작년 ‘아카라카를 온누리에’(아래 아카라카) 암표 기사를 취재할 당시 응원단에게 던진 질문이다. 4번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응원단은 아카라카 티켓의 ‘총 수량’을 묻는 질문에 끝까지 동문서답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응원단의 불투명한 티켓 관리와 회계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관객이 스탠딩으로 관람했을 때 노천극장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만 4천명이다. 하지만 재학생들에게 티켓팅으로 주어지는 티켓은 1만 1천200장이다. 14,000과 11,200 사이 2,800이라는 숫자
제작이 없는 날에도, 나는 연세춘추 편집국을 찾곤 한다. 넓고 조용해 할 일을 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항상 북적이던 공간을 감싸고 도는 공허함이 좋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무도 없는 편집국에 앉아 과제를 하고 있었다. 기승하는 꽃가루 때문에 복용한 알레르기약의 영향인지, 봄바람과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잠시 후, 유리문 열리는 소리가 나른한 정적을 깨뜨렸다.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함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 한 분이 편집국으로 들어오셨다. 스스로를 ‘동인’(연세춘추/대학언론사의 졸업생)이라고 밝힌 그는 1967년 지면에 실린 본인의